암호화폐도 상속재산일까? 비트코인 등 디지털 유산의 채무 변제 의무와 위험성
고인의 유품을 정리하다 보면 책상 서랍에서 예금 통장이나 부동산 등기권리증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속에 설치된 가상화폐(암호화폐) 거래소 앱이나 책장 사이에 끼워진 복잡한 비밀번호(니모닉) 메모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디지털 유산'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금이나 부동산은 당연히 상속재산으로 생각하여 신고하고 빚을 갚는 데 사용하지만, 실체가 없는 코인이나 NFT, 유료 계정 등을 마주하면 상속인들은 혼란에 빠집니다. "이건 사이버머니 같은 거니까 재산 신고 안 해도 되지 않을까?", "몰래 팔아서 현금화해도 채권자들은 모르지 않을까?"
하지만 이러한 안일한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법원은 디지털 자산을 명백한 재산적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이를 누락하거나 은닉할 경우 상속포기가 무효가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자산의 법적 성격: 명백한 '상속재산'
가상화폐(비트코인, 이더리움 등)를 포함한 디지털 자산의 법적 지위는 과거에는 모호했으나, 현재는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 및 대법원 판례를 통해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무형의 재산'**으로 확고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따라서 고인이 남긴 암호화폐는 민법상 상속재산에 해당합니다. 이는 예금이나 주식과 마찬가지로 상속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되며, 고인에게 채무가 있다면 당연히 빚을 갚는 데(채무 변제) 사용되어야 할 책임재산이 됩니다.
즉, 상속재산 목록을 작성할 때 부동산, 예금과 함께 고인이 보유한 코인의 종류와 평가액을 반드시 기재해야 하며, 이를 채권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야 합니다.
가장 큰 위험: '재산 은닉'으로 인한 단순승인 간주
빚이 재산보다 많아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하려는 분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부분이 바로 디지털 자산입니다.
일부 상속인은 "코인은 익명성이 보장되니 국세청이나 채권자가 모를 것"이라고 오해하여, 이를 상속재산 목록에서 고의로 빼거나 몰래 현금화하여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민법 제1026조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을 은닉하거나 부정소비한 때'**에는 상속포기나 한정승인을 했더라도 이를 무효로 하고, '단순승인(모든 빚을 떠안는 것)'을 한 것으로 본다고 무섭게 규정하고 있습니다.
최근 금융 시스템은 가상화폐 거래소와 실명 계좌가 연동되어 있어 추적이 용이합니다. 채권자가 추후에 고인의 코인 거래 내역을 찾아내어 "상속인이 재산을 숨겼다"고 소송을 제기하면, 상속인은 꼼짝없이 고인의 빚을 전부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유산, 어떻게 찾고 평가하나?
고인이 디지털 자산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경우, 이를 찾아내는 과정은 일반 금융자산보다 까다롭습니다.
국내 거래소: 금융감독원의 **'상속인 금융거래 조회 서비스'**를 신청하면, 고인이 계좌를 보유했던 가상자산 사업자(거래소) 정보가 함께 조회됩니다. 업비트, 빗썸 등 국내 주요 거래소는 제도권 내에 있어 파악이 비교적 쉽습니다.
해외 거래소 및 개인지갑: 문제는 바이낸스 같은 해외 거래소나 USB 형태의 콜드월렛(개인 지갑)입니다. 이는 금융 조회 서비스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고인의 스마트폰 앱, 이메일 내역, 메모장 등을 꼼꼼히 뒤져 단서를 찾아야 합니다.
가치 평가 기준: 상속세 및 증여세법에 따르면, 가상자산의 평가는 **'평가 기준일(사망일) 전후 각 1개월(총 2개월) 동안의 일평균 가액의 평균액'**으로 계산합니다. 변동성이 크기 때문에 사망 당일의 가격으로만 신고하면 추후 세무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비밀번호(개인키)를 모르는 경우의 처리
디지털 유산의 가장 난감한 점은 '접근성'입니다. 은행 예금은 상속인임을 증명하면 인출해 주지만, 암호화폐 지갑은 비밀번호(프라이빗 키)를 모르면 그 누구도, 심지어 개발자조차도 열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고인이 키를 남기지 않아 영원히 찾을 수 없는 상태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무적으로는 이를 **'재산적 가치가 없는 것(회수 불능)'**으로 소명하여 상속재산 목록에서 제외하거나 '0원'으로 평가받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거래소에 보관된 자산이라면 적법한 상속 절차(가족관계증명서 등 제출)를 거쳐 비밀번호를 재설정하거나 자산을 이전받을 수 있습니다.
글을 마치며
디지털 자산은 더 이상 법의 사각지대에 있는 '가상'의 돈이 아닙니다. 상속과 채무의 관점에서는 엄연한 실물 자산과 동일하게 취급됩니다.
고인이 남긴 빚을 정리하기 위해 한정승인이나 상속포기를 준비 중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자산이 숨어 있는지 더욱 철저히 확인해야 합니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코인을 현금화했다가는, 고인의 빚이라는 거대한 부메랑을 맞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특히 해외 거래소 이용 내역이나 복잡한 개인지갑이 발견된 경우에는, 세무사나 법률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상속재산 목록에 정확히 반영하는 것이 안전한 상속의 첫걸음입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법률 정보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구체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과 적용은 개별 사실관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