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채무 일부 변제 시 단순승인 간주 기준: 본인 재산 vs 상속 재산의 차이

 가족이 사망한 후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고려하고 있는 시기, 상속인들은 채권자들로부터 빚 독촉 전화를 받기도 합니다. 이때 상속인들은 독촉을 멈추게 하거나 연체 이자가 불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한 마음에 빚의 일부를 갚아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단 100만 원만이라도 갚으면 더 이상 전화하지 않겠다"는 채권자의 말에 소액을 이체하거나, 고인의 통장에 있던 돈으로 밀린 카드값을 결제해 버리는 행동들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소한 변제 행위가 법적으로는 **‘단순승인’**으로 간주되어, 상속 포기 기회를 영영 박탈당하고 남은 거액의 빚을 모두 떠안게 되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상속인이 상속 채무를 일부 변제했을 때, 어떤 경우에 법정단순승인(무제한 책임)이 되고, 어떤 경우에는 안전한지 그 명확한 법적 기준과 ‘재산의 출처’에 따른 차이를 분석해 보겠습니다.


양복을 입은 남자가 "결정의 순간"이라고 적힌 커다란 금화를 들고 두 갈래 길 앞에 서 있는 아이소메트릭 3D 일러스트레이션입니다. 왼쪽의 낡고 이끼 낀 돌길 앞에는 "상속 재산" 표지판이 세워져 있고, 이 길은 아찔한 절벽으로 이어져 위험해 보입니다. 반면, 오른쪽의 깨끗하고 빛나는 파란색 타일 길 앞에는 "고유 재산" 표지판이 있으며, 길 위에는 공정한 판단을 상징하는 저울이 놓여 있고 안전하고 아늑해 보이는 집으로 연결됩니다. 배경은 흐릿한 법률 사무소나 금융 사무실로 처리되어 있어, 상속 재산과 자신의 고유 재산 사이에서 중요한 법적, 재정적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시각적으로 명확하게 대비시켜 보여줍니다.


단순승인 간주(법정단순승인)의 핵심 개념

민법 제1026조는 상속인이 **‘상속재산에 대한 처분행위’**를 한 때에는 상속을 단순승인한 것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단순승인이란 상속 재산과 빚을 모두 100% 승계하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

법이 이러한 규정을 둔 이유는 상속인이 재산을 마음대로 주무르면서(처분하면서), 나중에 빚이 많다는 이유로 상속을 포기하는 도덕적 해이를 막고, 상속 재산의 현황을 신뢰한 채권자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법이 정한 ‘처분 행위’의 요건에 해당하면 자동으로 단순승인 처리가 되어 한정승인이나 포기가 불가능해집니다.

기준 1: ‘누구의 돈’으로 갚았는가가 결정적이다

상속 채무를 갚는 행위 자체가 무조건 단순승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가장 중요한 판단 기준은 **‘변제에 사용된 자금의 출처’**입니다.

1. 상속 재산으로 갚은 경우 (위험) 고인이 남긴 예금을 인출하여 고인의 카드값을 갚거나, 고인의 유품(귀금속, 차량 등)을 팔아서 빚을 갚는 행위는 명백한 **‘상속재산의 처분’**에 해당합니다. 판례는 이를 상속 재산을 감소시키는 행위로 보아, 단 1회, 소액이라 하더라도 법정단순승인 사유로 인정합니다. "빚을 줄여줬으니 채권자에게 좋은 것 아니냐"라고 항변할 수 있으나, 특정 채권자에게만 갚는 행위는 다른 채권자에 대한 불평등을 초래하므로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합니다.

2. 상속인의 고유 재산으로 갚은 경우 (비교적 안전) 반면, 상속인이 자신의 월급 통장이나 비상금(고유 재산)을 털어서 고인의 빚을 대신 갚는 것은 ‘처분 행위’로 보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상속 재산에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출연하여 채무를 줄인 것이므로 상속 재산 총량에는 변동이 없거나 오히려 플러스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채권자의 독촉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다면, 반드시 **‘내 돈’**으로 갚아야 단순승인의 덫을 피할 수 있습니다.

기준 2: 변제의 목적이 ‘보존 행위’인가

민법은 처분 행위가 아닌 **‘보존 행위’**는 단순승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보존 행위란 재산의 가치를 유지하거나 멸실을 방지하기 위한 행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상속 부동산에 경매가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연체된 이자’**를 변제하는 행위가 이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판례 중에는 상속인이 자신의 돈으로 피상속인의 채무 변제를 한 것을 넘어, 상속 재산(임대료 수익 등)을 사용하여 기한이 도래한 채무를 변제한 것에 대해 "상속 재산의 유지를 위한 보존 행위에 해당한다"고 보아 단순승인이 아니라고 판단한 사례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이는 매우 예외적이고 엄격한 요건 하에서만 인정되므로, 섣불리 일반화해서는 안 됩니다. "부동산을 지키기 위해서였다"라고 주장하더라도 법원이 이를 처분 행위로 판단해 버리면 되돌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장례비용 처리와 채무 변제의 경계

많은 분들이 혼란스러워하는 부분이 **‘장례비용’**과 관련된 변제입니다. 민법 제998조의2에 따라 장례비용은 상속 재산 중에서 지급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따라서 고인의 예금을 인출하여 장례식장 비용을 결제하는 것은 정당한 상속 비용의 지출로 보아 단순승인으로 간주되지 않는 것이 판례의 태도입니다.

그러나 장례를 치르고 남은 부의금이나 고인의 예금을 가지고, 장례와 무관한 **‘일반 대출금’**이나 **‘지인 빚’**을 갚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는 명백한 처분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장례비용 영수증 등 증빙 자료를 철저히 갖추고, 장례비 범위를 넘어서는 지출은 삼가야 합니다.

채권자의 함정과 상속인의 대응

채권추심원들은 상속인이 이러한 법리를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하여, "소액이라도 입금하면 성의 표시로 알겠다"며 변제를 유도하기도 합니다. 이때 무심코 고인의 계좌에서 이체 버튼을 누르는 순간, 채권자는 이를 근거로 "당신은 단순승인을 했으니 나머지 빚 1억 원도 다 갚으라"고 소송을 걸어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속 포기나 한정승인을 결정하기 전까지는 다음과 같은 원칙을 고수해야 합니다.

  1. 고인의 계좌 동결: 고인 명의의 예금, 적금, 보험금 등에는 일절 손대지 않습니다.

  2. 독촉 대응: 채권자에게 "현재 법원에 상속 한정승인 절차를 밟고 있으니,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명확히 통지합니다.

  3. 변제 금지: 설령 내 돈으로 갚는 것이 안전하다 해도, 굳이 갚을 의무가 없는 돈을 갚을 필요는 없습니다. 한정승인 후 청산 절차를 통해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깔끔합니다.

마무리하며

상속 채무의 일부 변제는 '선의'로 시작했다가 '파산'으로 끝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행동입니다. 법정단순승인 간주 여부의 핵심은 **"상속 재산에 손을 댔느냐, 아니냐"**입니다.

고인의 재산은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둔 상태에서 법원의 심판을 기다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만약 불가피하게 변제가 필요한 상황이라면, 자금의 출처가 본인의 고유 재산임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남긴 상태에서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합니다.

이 글은 일반적인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개별 사안의 구체적인 변제 행위가 단순승인에 해당하는지는 법률 전문가의 판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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